제가 작품을 쓰면서 마주하는 것은 독자라기보다는 저 자신에 가깝습니다. 제 자신 안에 무수한 타인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고, 저라는 사람을 형성하고 있는 요소 중 타인에게서 온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깨끗한 육체를 갖고 태어나서 저는 결국 환부를 얻게 되었는데, 이 환부가 생긴 이유에 대해 물리적으로 추론해봅니다.

  그저 아무에게도 제대로 말할 수 없었던 저의 내면과 타자의 내면이 작품을 통해 연결될 수 있을 거라고, 아직까지는 믿고 있습니다. 현실에서 타인을 만날 때에는 타인이 내 앞에 따로 존재한다는 걸 인식하게 되지만, 소설을 읽을 때에는 작중 인물이 나의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의 내부에 작중 인물의 거주 공간을 그리고, 작중 인물의 얼굴을 상상합니다. 작중 인물이 아파하며 신음 소리를 낼 때, 그것은 외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아닌, 내 내부에서 그려낸 작중 인물이 아파하는 소리로 들려옵니다. 이런 것들은 저절로 되는 일이지 않을까요. 소설은 분명 내 외부에 존재하는 사물인데, 소설을 읽으며 그려낸 세계는 제 안에 있습니다. 작중 인물의 아픔이 나에게 전가되는 체험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아픔을 작중 인물과 나누어 가지는 순간이 제가 창작을 하는 순간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또 다른 한 명과 아픔을 공유하는 것인데, 그렇게 해서 최소한의 보편성을 최초로 경험하는 것이 창작이라고 여깁니다. 독자들이 제 소설 인물에 동참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이 제 소설 속 인물의 환부를 경유하고 나서 자신의 현실로 돌아갔을 때, 경유하기 이전과 이후가 달라진 것이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제 소설을 읽은 독자들이 제 소설을 읽기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쓰고 싶었던 것들을 쓰고 싶습니다. 쓰고 싶었던 이야기를 쓰는 도중에, 써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이야기가 자꾸 더 생겨나버립니다.

<제8회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116-117쪽.

Posted by 양웬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