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오로지 희망만이 인간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게다가 희망은 사람을 좀 질리게 하는 면이 있는데, 우리는 대체로 그런 탐스러워 보이는 어떤 것들 때문에 자주 진이 빠지고 영혼의 바닥을 보게 되고 회한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11).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연경이라는 사람 자체가 아니라 나와 연경이 관계 맺던 방식과 그 두 사람의 관계 형태에서 극적 대비를 발견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21).

 

내가 지켜봐야 했고, 지켜보기를 강요당하다시피 했던 그 일들과 내가 알던 그들의 대비를 보다 드라마틱하게 하기 위해(그래서 그들에게 더욱 철저히 낙담하기 위해) 무의식 중에 설정한 일종의 장치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자문하곤 했다(16).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그런 걸 미리 알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곧이어 우연인지 운명인지 알 수 없는 삶의 무자비함에 아득한 무력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19).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상하이에는 진정한 의미에서 시대란 존재하지 않았어. 심지어 현대조차 없었지. 오로지 몰취향이 만들어낸 키치함뿐이었어. 거기에서 우리의 관계를 환기하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이 어려웠을까? 우리가 맺어온 관계를 상징하는 건 상하이가 가지고 있는 어떤 면이 아니라 그곳에 부재하는 무언가였어. 우리가 가지지 못했고 가질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31).

 

우리 매년 여름마다 여기 올까? 우리가 단 한 번도 이야기해본 적 없는 다음 여름에 대해 이야기할 만큼 현수는 그곳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우리가 단 헌 번도 이야기해본 적 없는 다음의 다음, 또 다음의 여름에 대해 이야기할 만큼 현수는, 그리고 우리는 그날의 분위기가 좋았던 것이다. 그 이후 잠시 동안, 결코 길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하게 정적이 흘렀다(35).

 

정말 이게 다야? 이게 끝이야? 그들의 세계는 이렇게 사라져버릴 만한 게 아니었다고, 내가 그 해방촌의 언덕을 올라 도달한 세계는 이런 게 아니었다고 나는 생각했다(38).

 

나는 온전히 나로서 존재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온전히 나로서 존재하게 되는 걸 피하고자 했던 것 같다. 꽤 오랫동안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나 돌이켜보았지만, 그건 옳은 질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무엇이, 그들이 나를 그렇게 만들 수 있도록 했는지가 더 나은 질문이었던 것 같다(40).

 

모든 것이 끝난 뒤에 그것을 복귀하는 일은 과거를 기억하거나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일이니까. 그것은 과거를 다시 경험하는 것이 아닌 과거를 새로 살아내는 것과 같은 일이니까. 그러나 읽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글을 쓰는 것은 생각보다 고독한 일이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글을 쓰다가 어쩌면 내가 영원히 혼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게 문득 참을 수 없이 두려워졌다(41).

 

내일의 연인들

 

내가 한 때 머물렀던 남현동 산자락의 조용하고 아늑한 빌라의 소유주는 선애 누나와 그녀의 남편으로, 두 사람은 그곳에서 오년 정도 결혼 생활을 한 뒤 파경을 맞이했다. 그 시기 나는 이십대 후반의 대학원생이었고, 만에 하나 잘되면 이렇게 될 수도 있겠다 싶은 미래에 대한 그럴듯한 전망도 없이 그저 온전한 현재자로서 존재하고 있었다(45).

 

지금은 물론이고, 당시에도 나는 그녀의 그런 말들이 나를 어떻게 그토록 감동시켰는지, 그런 말을 들을 때 마다 왜 더욱 열렬히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나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여겼던 것이, 아니면 적어도 그렇게 여기고 있다고 내가 믿게 만들어주었던 것이, 내가 정말로 그러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나에 대한 그녀의 애정으로 인한 왜곡된 시선 혹은 배려였을 뿐이라고 하더라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그 시기에 그 말이 필요했고, 그녀가 그 말을 제공해주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59).

 

내가 대학원에 들어간 것도 어떤 거리감을 획득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62).

 

이제와 돌이켜보면 내가 그 단어를 떠올렸던 이유는 실은 지워과 내가 서로를 구원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그저 서로가 어떤 식으로든 구원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는 증거였을 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서로에게 특별한 사람들이었던 게 아닐 마침 구원이 필요했던 두 사람이었을 뿐이라고(64).

 

정훈이에게 느낀 고마움이나 애정과는 별개로 그냥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된 거야. 그건 거부할 수 있는 종류의 감정이 아니었어. 살다보면 결코 거부할 수 없는 것들이 찾아오곤 하니까.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그 사람을 선택하는 방향으로만 움직이고 있었는데, 내가 달리 어쩔 수 없었겠어(69).

 

왠지 그 밤은 영영 지나가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그것은 내게 앞으로 다가오거나 다가오지 않을 무수히 많은 행복한 시간들과 외로운 시간들의 징후처럼 느껴졌다(72).

 

무사하고 안녕한 현대에서의 삶

 

나는 한참 동안 그 아이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순간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어떤 영원에 대해 자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한 해가 아니라 십 년이 지나고, 어쩌면 삼십 년이 지난 후에라도 내가 그 불운한 일에 대해, 그 아이에 대해 완전히 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함께 찾아왔다. 나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영원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가까이 느껴본 적이 없었다(118). 

 

두 사람의 세계

 

 연인이 된다는 것은 두 개의 삶이 하나로 포개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결별의 순간이 오면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어떤 이들은 그 상태가 너무 오래 지속되어 원래의 삶을 잊어버리거나 혹은 잃어버리기도 한다. 나로서는 상상하기 쉽지 않지만 이영선과 하남영에게도 당연히 서로를 알지 못한 채 개별적인 삶을 살아온 시간이 있었다(185).

 

나는 종종 누군가가 다른 사람과 연인이 되려면 어떤 요소가 필요한지 궁금해하곤 했다. 영선과 남영에게 그렇게 되었어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 두 사람은 그저 우연히 같은 공간에 있었고, 무심결에 건넨 말에 함께 가벼운 외출을 하게 되었고, 그리고 몇 번의 만남, 그보다 많다고 해봐야 십여 차례 정도의 만남을 가진 뒤에는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남영이 남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영선이 영선이 아니라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결과는 같았을까? 나는 어쩔 수 없이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191-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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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무산, 견디다

2020. 7. 15. 10:16 from 美_아름다움.

명절날 친척들 한 자리에 둘러앉으니
그곳이 이제 갈등 들끓는 국가다
그 가운데 한 명 이상은 사장이고
한 명 이상은 극우파이고
한 명 이상은 붉은 머리띠를 매어 보았고
한 명 이상은 고학력 실업자이고
한 명 이상은 비정규직이고
한 명 이상은 영세상인이고
한 명 이상은 조기퇴출되어 보았고
한 명 이상은 대기업 정규직이고
누구는 파출부를 하면서 극우파이고
누구는 농민이면서 친미파이고
누구는 부동산으로 돈깨나 벌었고……


누구든 하나가 세상 푸념 시부렁대면
여지없이 면박이 날아온다 위아래가 치고받는다
누구 없이 망국론이다 전엔 여당 야당이 다투더니 이젠 전방위다
그러나 그것이 차라리 진보라면 진보다
정치가 이제 밥상머리에 왔다
권력이 이제 문간 들머리에서 쌈질이다
정치가 삶에 들붙어 떨어질 줄 모른다
누가 누구의 전부를 뭉개버리기 어렵게 되었다
산 것과 죽은 것이, 쌀과 뉘가 뒤섞인 건
오래 가지 않는다 밥솥까지 가지 못한다
그걸 선별해내느라 구경꾼들이 무대까지 올라왔다
지금은
이 소란스러움을 견디는 일이 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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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5일.

2020. 1. 17. 16:21 from 理_앓음다움.

 

*

내년 다이어리가 출시되는 시즌이 올 때마다 그는 마음이 초조해짐을 느꼈다. 이제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1월 15일은 그가 살고 있던 방의 전세 계약이 끝나는 날이었다. 이제 슬슬 떠날 준비를 해야만 했다. 떠나고 싶어서 방을 새로 구하는 건 아니었다. 그의 주민등록등본을 가득 채운 방의 역사들을 돌이켜 보건대 모든 방은 계약 전에는 그럴듯해 보였으나 조금만 살아보면 제각기 문제를 안고 있기 마련이었다.

어떤 방은 층간 소음이 문제였고, 어떤 집에서는 공용 복도에서 빨래를 말릴 때마다 속옷이 사라지곤 했다. 신고를 여러번 하곤 했으나 범인은 찾을 수 없었다. 범인의 행각이 멈춘 것은 CCTV를 설치한 이후의 일이었다. 어떤 방은 겨울에는 미처 몰랐으나 여름에는 정말 죽을 만큼 무더웠다. 곧 이사갈 때 에어컨 이전비용을 부담하기 어려웠기에 제습기, 써큘레이터 등을 하나씩 구입하고 나니 사실상 에어컨과 비슷한 돈이 들기도 했다. 어떤 방은 지하에서 피우는 담배 연기가 그대로 들어오는 구조였다. 멀리 사는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이 상황을 하소연 해보곤 했지만 이미 주인도 포기한 듯, 젊은이가 지하에 사는 할머니를 좀 이해달라는 말을 할 뿐이었다. 그는 창문을 닫았고 할머니는 여전히 담배를 피워댔다.

 

*

처음에는 어리숙해서 허튼 방을 계약하나 싶었다. 하지만 여러 번 방을 옮기면서 방을 보는 눈높이는 높아지고 안목도 길러졌지만 방은 살아볼 때에만 비로소 그 진면목을 드러냈다. 한 계절을 다 살아보고, 또 이웃이 누가 살고 있는지를 모두 알고보고 방 계약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동네의 문제도 아니었다. 서울 대부분의 구와 동네들의 이름을 외웠지만 마주치는 문제점은 항상 비슷했다. 결국 문제는 지금 그가 지닌 자금으로 서울에서 구할 수 있는 방은 모두 어느 정도의 결함을 지닌 방임을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아무리 꼼꼼해져도 여유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는 그런 여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이 두 문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10년이 넘는 시간을 수업료로 냈다니 조금은 억울한 마음도 들기도 했다. 이제 그에게 남은 유일한 기준은 넓이였다. 여전히 ‘평’ 개념의 공간감에 익숙했던 그는 이제 누구보다 빨리 방 넓이를 3.3으로 나누어 방 크기를 가늠해볼 수 있었다.

 

*

‘미니멀리즘’이란 말이 없었다면 얼마나 삶이 비루했을까라고 그는 자주 생각했다. 어느 정도 넓이가 확보된 방을 구하면 그는 방을 여러 물건들로 적당히 채워 넣었다. 방을 옮길 때마다 이케아에 가서 쇼룸을 보고 새가구를 하나 정도는 샀고, 개중 낡은 가구는 항상 버렸다. 이케아 가구를 처음 개봉하고 조립할 때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 이게 일조량이 적은 스웨덴인들이 즐기는 ‘우드워크’려나 그는 오래전 어디선가 배운 영어단어를 떠올렸다. 방에서 혼자 하는 ‘우드워크’는 너무나 쉽게 끝나서 초라한 감도 들었다. 그러나 언젠가 지금 산 이 가구도 버리겠지만 그 쉽게 버릴 수 있음에, 미니멀리스트인 그는 감사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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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령기 첫해의 신체검사 기록은 여러모로 의심스럽다. 이후의 기록들과는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혈액형은 평생에 걸쳐 RH+O형으로 확정되었다. 그런 것들도 잘못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식이 내게는 없다. .... 상식으로 널리 알려진 기초적 생물학 지식과 오쟁이 의식의 결합이 낳은 비극이었다. 아버지 역시 당시싸지 자신의 혈액형을 정확히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 일이 나를 잠깐 멀리 보내는 데 일조했다(1). 

   ... 언제나 IMF 핑계를 대며 용돈을 주지 않던 부모들의 한숨과 더불어 우리를 사로잡고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세계는 끝장나리라'는 정서였다. 그건 내가 곧 해산될 지경에 놓인 회사에서 순장조임을 예감하며 머무리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감정이었다. 두렵지만 설레는 것이었다. 만약 지구의 마지막 날이 온다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손을 잡고 눈을 꼭 감고 소멸하리라, 생각했던 내게 아른거리던 이미지는 언제나 임사 체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분신사바를 하며 놀았던 친구들과 체육관 구석 매트리스 더미에 기대앉아 소멸하는 장면이었다. 노트에 그런 그림을 그렸던 적도 있다. 거기 부모는 없었다(6-7).

  아마도 혼자였을 거야.

  팟.

  하얀 플래시가 터졌고 그 때 나는 죽었어(8).

  이것이 서울 피토레스크였다. 교수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었다. 1999년의 우리들이었다면 다 함께 이불을 뒤집어쓰고 여긴 우리가 죽은 세상이야, 우리는 이 곳에서 적응해서 살든지,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노력해야 해, 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빠져나가면 다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야. 나는 그렇게 말하고, 노스트라다무스를 구루로 모시던 친구는 아니, 그곳은 암흑, 세상의 끝이지, 라고 말했을 것이고, 버뮤다 삼각지대를 날마다 상상하던 친구는 우리는 세상이 모르는 곳에 있어, 라고 말했을 것이며 우주 때문에 잠 못 자던 친구는 괜찮아, 유니버스는 무한하니까, 어디든 갈 곳이 있어, 라고 말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끼리만 하는 아주 내밀한 이야기였다(12).

 

  나는 아니었다.

  나는 그날 잠깐 죽었을 뿐이었다. 일시적으로 눈이 멀었고.

  그 일을 계기로 임사 체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시력의 불안정함에 대해 생각하다 영상미디어과에 진학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잠깐 죽었을 뿐이었는데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13).

 

  나는 눈이 멀었던 적이 없었다. UO의 몽타주가 제 교복 셔츠의 넥타이를 풀어 내 눈을 감겨 버렸기 때문에 암흑에 갇혔을 뿐이었다. UO는 컴컴해서 플래시가 터졌고, 그 때 내게는 실제로 들리지 않았을 소리, '팟'이 환청처럼 들렸으며, 그 때 영혼이 달아났다. 담배를 피우러 다녀온 아버지는 비상구 문 앞에 쓰러져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상담사에게 대답했다.

  나는 죽었던 적이 있어요.

  (나는 발가벗겨진 채 사진을 찍혔고) 그 때 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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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向きに生きることほど

앞을 향해 사는 것 만큼이나

素晴らしいことはない

멋진 일은 없어

でも「前向きに生きて」じゃ

그래도 “앞을 향해 살아줘”여서는

頷けない誰かさんの為

납득이 가지 않는 누군가를 위해

夢追い人は

꿈을 좇는 사람은

ともすれば社会の孤児た

자칫하면 사회의 고아야

手段は選ばない

수단은 고르지 않아

いや、選べなかったんだ

아니, 고를 수 없었어

恨み辛みや妬み嫉み

원통함과 괴로움이나 질투나

グラフキューブで心根を塗った

그래프 큐브로 본성을 칠했어

それでも尚塗りつぶせなかった

그래도 여전히 완전히 칠하지는 못 했어

余白の部分が己と知った

여백의 부분이 자신임을 알았어

今更弱さ武器にはしないよ

이제와서 약함을 무기로는 하지 않아

それが僕らがやってきたことの

그게 우리들이 해온 것들의

正しさの証明と知っている

옳음의 증명임을 알고 있어

今こそ僕があの日の答えだ

지금이야말로 내가 그 날의 대답이야

見える人にだけ見える光だ

보이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빛이야

陰こそ唯一光の理解者

그림자야말로 유일한 빛의 이해자

旅立ちと言えば聞こえはいいが

여행길이라 말하면 듣기에는 좋지만

全部投げ出して逃し出したんだ

전부 내던지고 도망쳐 나왔어

孤独な夜の断崖に立って

고독한 밤의 낭떠러지에 서서

飛び降りる理由あと一つだけ

뛰어내릴 이유 앞으로 단 하나

そんな夜達に「くそくらえ」って

그런 밤들에게 “엿이나 먹어”라고

ただ誰かに叫んで欲しかった

그저 누군가가 외쳐주길 바랬어

未来になれなかったあの夜に

미래가 되지 못한 그 밤에

未来になれなかったあの夜に

미래가 되지 못한 그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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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2019.

2019. 11. 19. 13:45 from 美_아름다움.

 

내가 있었던 가장 아름다운 장소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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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7일

2019. 4. 27. 21:54 from 理_앓음다움.

어쨌든 나는 그렇게 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서른 세살, 그것이 그 당시 나의 나이였다. 아직은 충분히 젊다. 그렇지만 이제 '청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떠난 나이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조락은 그 나이 언저리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그것은 인생의 하나의 분기점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나이에 나는 러너로서의 생활을 시작해서, 늦깎이이긴 하지만 소설가로서의 본격적인 출발점에 섰던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2009, 76-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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