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럴 수밖에. 누군가와 함께 살았었으니까.
이 년?
응, 이 년.
그러면 총 삼 년을 산거네.
그런데 마치 삼십년을 산 집처럼 그 집이 지겨워졌어. 도망치듯이 떠나야했어.
그럴 수밖에. 누군가와 함께 살았었으니까.
그가 먼저 떠났었으니까(67-68).
전화를 끊고, 굽은 등을 펴고, 주저앉아 울었어. 그러고 보니 난 서른 살이었어. 겨우 서른 살이었어.
그를 사랑했니?
응, 그를 사랑했다.
누구를 말하는 거니. K? 아니면 프랑스 남자?
누구든. 모두. 떠난 모두. 떠났으므로(74).
먼 훗날 다시 한번 주울거지?
응, 아마도.
기억도 할 수 없는 오래 전의 일이 바로 어제 일처럼 불쑥 다가올 때.
응, 길을 걷다 불쑥.
그 일을 이해해야 하니까.
아냐. 꼭 그런 것은 아냐.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아마 결코 그 일을 이해하진 못할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그 일은 세상에서 가장 미스테리한 단 하나의 불가사의로 눈부시게 빛날거야.
그럼 왜 줍지?
기억 속 찬란한 순간을 위해. 믿기 어렵지만, 다시 한번 그 순간을 살기 위해(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