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분명 힘주어 또박또박 말하고 있는데, 상대방하고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쪽이 내 표정을 읽지 못하고 억양을 놓치는 거야. 상대가 그런 반응을 보이고 소통이 되지 않는 건 순전히 내 탓이라는 거지. 나 또한 그쪽이 무언가 말하면 뭐라고요. 잘 안들리네요. 다시 한번 말씀해보시겠어요라고 대꾸하고 나서야 비로소, 아 코앞에 있는 줄 알고 무례하게 대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뒤로 한 발 물러섰는데 사실은 꽤 멀었구나 하고 깨닫기 일쑤였고. 물리적 거리만이 아니라 매사가 그런 식이었어. 나는 예전처럼 무심코 가까이 다가갔다 그 쪽을 다치게 할지 몰라 망설이고 그쪽은 내가 뒷걸음질한 만큼 다가오고 그러면 또 나는 뒤로... 우리는 상대를 지척에 두고도 링반데릉에 빠져 서로에게 가 닿지 못하는 조난자들 같았어. 그러니 뭐가 될 턱이 있겠냐. 처음부터 사람을, 오래전 내가 도전했던 시멘트 건물이나, 그 후로 부딪치기를 피하느라 애쓴 전봇대와 같은 선상에서 대했으니 말이야. 그 사람한테 다가가야 할 때와 멀어져야 할 때를 계속 놓치고 실수하면서 나는 그 동안 내 몸속에 이렇게 많은 허허벌판이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했는데, 이를테면 내 안에 잘못 들어찬 텅 빈 공간이 오히려 몸의 체적보다 커서 한번 부딪치거나 적절한 타이밍을 맞추지 못할 때마다 나는 누에고치가 뽑아내는 실처럼 몸에서 공간을 토해내는 거라고, 이 개활지를 모두 뱉어내고 나면 어디에도 여분의 빈자리를 없을 테니 그 사람과 가장 적절한 간격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간격을 확정 짓는다는 건 곧 서로에게 다가갈 가능성도 내포한 것인 만큼 우리의 관계는 그때부터 비로소 시작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토해내도 내 인식과 감각은 달라지지 않았어. 그 사람이 실망하면서 떠나버린 뒤에야 나는 얼마나 그 쪽에 가까이 다다르고 싶었는지, 아니 밀착되고 싶었는지를 알았지.(31-32)"

Posted by 양웬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