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나는 여기에 있어도 돼.’가 아님을 잘 생각해야 한다. 나는 내가 싫어. 하지만 좋아할 수 있을 것도 같아. 어차피 나는 나야. 내가 나를 허락하면 괜찮은 거야.’ 이 메시지는 단순히 나는 내가 좋아.’로 귀결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극히 현실적이며, 그래서 더욱 가치가 있다. 신지는 여기서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해 깨달았을 뿐, 여전히 그 스스로에 대해 긍정하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보완 이후 현실에 눈을 뜬 신지는 여전히, 아니 당연히, 스스로를 혐오하고 있었을 테다. 마음 아주 깊은 곳에,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깨달음의 씨앗만 심어 두었을 뿐, 여전히 그는 자신, 타인이 두려웠다. 그래서 남을 상처 입힌다. 카오루가 경고한 대로이다. 그리고 신지는 이미 그것을 각오했다.상처 입히지 않을 자신이 있어서가 아니라,그래도 그런 현실을 견딜 자신이 있어서
여기 있어도 돼?’에 대해 신지 스스로 내린, 값진 결론이기도 했다. 그러나 저 메시지가, 단순히 나는 여기에 있어도 돼.’가 아님을 잘 생각해야 한다. 나는 내가 싫어. 하지만 좋아할 수 있을 것도 같아. 어차피 나는 나야. 내가 나를 허락하면 괜찮은 거야.’ 이 메시지는 단순히 나는 내가 좋아.’로 귀결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극히 현실적이며, 그래서 더욱 가치가 있다. 신지는 여기서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해 깨달았을 뿐, 여전히 그 스스로에 대해 긍정하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보완 이후 현실에 눈을 뜬 신지는 여전히, 아니 당연히, 스스로를 혐오하고 있었을 테다. 마음 아주 깊은 곳에,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깨달음의 씨앗만 심어 두었을 뿐, 여전히 그는 자신, 타인이 두려웠다. 그래서 남을 상처 입힌다. 카오루가 경고한 대로이다. 그리고 신지는 이미 그것을 각오했다.상처 입히지 않을 자신이 있어서가 아니라,그래도 그런 현실을 견딜 자신이 있어서였다. 아주 중요한 차이이다!

1.

여기 있어도 돼?’란 질문을 대한 답을 생각해본다.

그 답이 단순히 '나는 여기에 있어서 좋아'일 수는 없다. 그건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다.


2.

"나는 내가 싫어. 항상 사라지고 싶을만큼. 하지만 언젠가 좋아할 수 있을지도 몰라. 어차피 나는 나일 수밖에 없으니까. 내가 '나'를 허락하다면 괜찮을거야. 그냥 그렇게 있고 싶어. 그래, 나는 여기에 있고 싶어." 이게 오히려 더 지금 나의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이면서 솔직한 답이다.


3.

스스로를 긍정한다는 것은 나 같은 삐딱이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목표다.

항상 나에게 허락되는 것은 '또다른 가능성'일 뿐이지, 이전으로부터 완전히 새로워진 결과물로서의 이상적인 나는 아닐 것이다. 내가 지닌 공허는 내가 앞으로 무엇인가를 이루어내더라도 쭉 계속 될 것이다.


4. 

올 한 해 몸과 마음 속에 심어낸 것은 '내가 매일매일 조금씩 변해갈 수 있다'는 믿음의 인셉션. 그 작은 씨앗이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아직은 모르겠다. 긴 호흡으로 두고 보자.


5.

여전히 관계에서 상처를 입었고, 상처를 주었고, 나 스스로를 종종 혐오했으며 타인을, 그리고 세계를 두려워했다. 여전히 2017년으로부터 회복 중. 2008년에 이어 2018년은 큰 변곡점이었다.


6.

여러 번의 순례 이후에도 삶은 계속 된다. 어쩌면 삶 자체가 순례다.

그러나 계속, 어떤 각오를 하게 된다.


7.

앞으로 남에게 상처주지 않을 자신이 있어서, 는 아니다.

'그런 현실'을 어찌저찌 견뎌낼 자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차이를, 올 해

많이 배웠다.

Posted by 양웬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