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12월의 기록

2018. 12. 30. 00:49 from 理_앓음다움.

1. 누군가를, 아니 이번 생에 나 자신을 정말이지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조우en-counter할 수 있을까. 또 설령 그렇다한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세상은 정말이지 희소하게 존재한다는 말은 너무나도 맞는 말이다. 세상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그게 잘 안된다고 힘들어하는 것이 나한테는 무척이나 중요한 문제일 수 있지만, 세상은 그걸 전혀 배려해주지 않는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 이건 잔인한 것이 아니라 그냥 그런 것이다.


2. 나와 세상 사이에서 위화감과 비슷한 감정을 느낄 때마다 나는 텍스트 속으로 '휙' 도피해온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현재 있는 곳이 리얼 월드가 아닌 일종의 판타지 월드라는 점은 머리로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 번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세상은 넓다. 작은 은신처를 넘어서 좀 더 밖으로도 나가봐야 한다. 나의 세상은 그동안 너무나도 왜소해지고 말았기에.


3. "나여만 한다, 나이기 때문에 안된다, 나여만 한다"가 끊임없이 루프 중. 그런 상황 속에서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여러 곳에서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전혀 다른 삶을 살아보고 해방감에 가까운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 반대급부로 '지금 이 곳'의 나를 충분히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있다. 나 역시 "어디에 가서도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고 돌아와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 경험 자체가 무의미한 '공회전'이었다고는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경험이 공회전이 되버리게 만드는 것은 현재의 나의 선택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이 곳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나는 모욕당한 인간이다. 한 발자국을 내딛는다면 나는 패배하지 않은 인간이 될 수 있다. 후자의 길을 택한다. 


4. 그렇기에 어떤 막연한 기대들이 뭉게뭉게 생기고, 그렇게 생겨난 기대들이 내 눈과 마음을 흐리게 했다. 가장 두고두고 아픈 부분이다. 나를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런 부분들을 좀 더 섬세하게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만이 내가 타자/상대방에게 바라는 것이 되어서는 물론 안 되겠지만 말이다.  마초가 되지 않겠다는 선택이 영원히 순진한 척하는 어린 아이로 남아버리는 선택이 되어버렸다는 싸한 느낌도 있다. 바보같아.


5. 텍스트 속의 세계를 종횡무진 넘나들면서도, 텍스트 바깥에서도 온전하면서도 유능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할 때면 항상 아빠한테 들었던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모골이 송연해진다.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공부를 정말 잘했지만,  사회생활 측면에서는 샌님처럼 너무나도 무능했고, 사태를 직시하지 않고 최대한 책임을 도피해버린 할아버지. 할아버지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어릴 때는 할아버지의 좋은 면이 눈에 들어왔다면, 요새는 그런 면들이 계속 눈에 밟힌다. 아빠로부터 들은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나의 영원한 반면교사.


6. 세상 바깥도 무서운 게 맞지만, 현재는 텍스트 안의 세계도 무서워서, 가끔 꿈도 꾼다. 텍스트에 잡아먹히는 꿈. 둘 다 마주해야 한다. 더 피할 수는 없다. 반격을 시작하자. 어차피 누가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일은 아니잖아? 까짓 것. 


7. 목소리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내 '단조로운' 목소리가 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조금은 서툰 수단이며, 타인에게 내가 진정으로 생각하는 바를 아리송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 목소리를 조금 한 톤 정도 높이고, 다양하게 소리를 내보면 좋겠다는데...가끔 내가 깔깔거리는 목소리는 너무 높고, 평소의 목소리는 너무 낮고 변화가 적은 편이어서  나도 괴리감을 느낄 때가 있는데, 적당선을 찾아보고 싶다.




Posted by 양웬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