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ねえ 思い出の欠片に

네- 오모이데노 카케라니

(저기) 추억의 조각에

 

名前をつけて保存するなら

나마에오 츠케테 호존-스루나라

이름을 붙여 보존하려면

 

"宝物"がぴったりだね

타카라모노가 빗타리다네

보물이 딱이야

 

そう 心の容量が

소- 코코로노요료-가

그래 마음의 용량이

 

2倍になるくらいに

니바이니나루쿠라이니

2배가 될 정도로

 

過ごしたね ときめき色の毎日

스고시타네 토키메키이로노마이니치

지났네, 두근거리는 매일

 

馴染んだ制服と上履き

나진다세-후쿠토 우와바키

정든 교복과 실내화

 

ホワイトボードの落書き

화이토보-도노 라쿠가키

화이트보드의 낙서

 

明日の入り口に

아시타노 이리구치니

내일을 향한 출구에

 

置いてかなくちゃいけないのかな

오이테카나쿠챠 이케나이노카나

두고 가지 않으면 안 될까?

 

でもね 会えたよ

데모네 아에타요

그렇지만 만났어

 

素敵な天使に

스테키나 텐시니

멋진 천사를

 

卒業は終わりじゃない

소츠교-와 오와리쟈나이

졸업은 끝이 아니야

 

これからも仲間だから

코레카라모 나카마다카라

앞으로도 친구이니까

 

一緒の写真たち お揃の記憶が

잇쇼노샤신타치 오소로-노키오쿠가

함께 찍은 사진들, 함께 만든 기억들이

 

いつまでも輝いてる ずっと

이츠마데모 카가야이테루 즛토

언제까지나 빛나고있어 계속

 

その笑顔 ありがとう

소노에가오 아리가토-

그 미소 고마워

 

駅のホーム 河原の道

에키노호-무 카와라노미치

역의 플랫폼 강가의 자갈밭길

 

離れてても同じ空見上げて

하나레테테모 오나지소라 미아게테

떨어져 있어도 같은 하늘 올려다보며

 

ユニゾンで歌おう

유니즌-데 우타오-

같은 높이로 노래해

 

でもね 会えたよ

데모네 아에타요

그렇지만 만났어

 

素敵な天使に

스테키나 텐시니

멋진 천사를

 

卒業は終わりじゃない

소츠교-와 오와리쟈나이

졸업은 끝이 아니야

 

これからも仲間だから

코레카라모 나카마다카라

앞으로도 친구이니까

 

"大好き"っていうなら

"다이스키"ㅅ테이우나라

"사랑해"라고 말하면

 

"大大好き"で返すよ

"다이다이스키"데 카에스요

"더 사랑해"라고 돌려줄게

 

忘れ物 もうないよね

와스레모노 모-나이요네

잊은 물건, 이제 없지?

 

ずっと 永遠に一緒だよ

즛토 에이엔니 잇쇼다요

계속 영원히 함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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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의 시작.

2012/02/11 18:54 from 雜_앓음다움.


한 시간의 독서를 하면 어떤 고통도 진정이 된다. - 몽테스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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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이 엄숙한 대지, 괴로워하는 대지에 내 가슴을 맡기고,
신성한 밤이면 숙명의 무거운 짐을 진 이 대지를 죽을 때까지 
충실하게 두려움 없이 사랑하며,

그의 수수께끼를 단 하나도 경멸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했노라.

그리하여 나는 죽음의 끈으로 대지의 품에 들었노라.

휠덜린, <엠페도클레스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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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학생활

2012/01/12 07:29 from 知_알음다움.

1. 하늘


(정치학과) 정치학원론(06/1)

(외교학과) 국제정치학입문(06/s)

(외교학과) 국제정치학개론(06/2)

(여성학과) 페미니즘의 이해(07/1)

(정치학과) 비교정치론(08/1)

(외교학과) 국제정치사상(08/2)

(외교학과) 국제정치이론(11/1)

(외교학과) 국제정치경제론


2. 땅


(사회학과) 남북관계의 역사적 전망(06/1)

(국사학과) 한국의 독립운동(06/1)

(국사학과) 한국현대사의 이해(06/2)

(외교학과) 한반도와 국제정치(07/1)

(국사학과) 남북분단과 한국전쟁(07/1)

(외교학과) 한국외교사(07/2)

(동양사학과) 동아시아 근대의 사적 전개(07/2)

(외교학과) 동아시아국제정치론(08/2)

(사회학과) 민족사회학과 북한연구(11/1)


3. 사람 : 시간


(외교학과) 국제관계의 역사적 이해(06/1)

(동양사학과) 세계사 속의 이슬람 문명(06/2)

(외교학과) 국제관계사개설(07/1)

(서양사학과) 역사와 영화(07/s)

(서양사학과) 기독교와 유럽문명(07/w)

(서양사학과) 서양의 근대문화(08/1)

(서양사학과) 해양팽창과 근대 서양의 형성(08/1)

(서양사학과) 민족주의의 역사(08/1)

(서양사학과) 학생자율연구1 : 프랑스 혁명과 민주주의(08/2)

(서양사학과) 서양의 지적전통(08/2)

(서양사학과) 20세기 후반의 역사(08/2)

(서양사학과) 불문사적강독 : 비시프랑스

(정치외교학과) 전쟁과 평화(11/1)

(서양사학과) 러시아사(11/2)

(과학사/과학철학) 역사 속의 과학(11/2)

(동양사학과) 몽골세계제국사(11/2)


4. 사람 : 공간


(불어불문학과) 프랑스어1(06/2)

(불어불문학과) 프랑스어2(11/w)

(서어서문학과) 스페인어1(06/2)

(불어불문학과) 불어권 사회의 이해(07/1)

(서어서문학과) 스페인어권의 이해(07/1)

(언어학과) 아랍어1(07/2)

(정치학과) 정치학특강(07/2)

(인류학과) 동남아사회의 이해(08/s)

(외교학과) 세계지역연구개론(08/2)

(외교학과) 러시아 유라시아 국제관계론(11/1)

(외교학과) 중국외교정책론(11/1)

(외교학과) 중동아프리카 지역연구(11/2)

(러시아학) 유라시아 탈공산주의 이행(11/2)

(국어국문학과) 대학국어(11/2)

(노어노문학과) 러시아 명작의 이해(11/2)

.......................................................

경제원론1(11/w) avec 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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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의 추천(무순위)

- 장강명, <표백>, 한겨레출판사, 2011.
- 푸슈킨, <대위의 딸>, 펭귄클래식, 2009.
- 염상섭, <삼대>, 문학과지성사, 2004.  
- 은희경, <타인에게 말걸기>, 문학동네, 1996.
- 장석준, <신자유주의의 탄생>, 책세상, 2011.
- 엄기호, <이것이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2010.
 
 




J의 추천(무순위)

- 장강명, <표백>, 한겨레출판사, 2011.
- 정유정, <7년의 밤>, 은행나무, 2011.
- 심보선, <눈 앞에 없는 사람>, 문학과지성사, 2011.
- 임재성, <삼켜야했던 평화의 언어>, 그린비, 2011.
- 김홍중, <마음의 사회학>, 문학동네, 2009. 

 



O의 추천(무순위)

1. 책(Book)


- 파파드미트리우 외, <로지코믹스>, 랜덤하우스코리아, 2011.  
- 타밈 안사리,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뿌리와이파리, 2011.
- 문강형준, <파국의 지형학>, 자음과모음, 2011.
- 사이드 쿠틉, <진리를 향한 이정표>, 평사리, 2011.
 

- 황장엽,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한울, 1999.
- 권용립, <미국외교의 역사>, 삼인, 2010.
- 발터 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폭력 비판을 위하여>, 길, 2008.
- 김항, <말하는 입과 먹는 입>, 새물결, 2009.
- 서경식, <디아스포라 기행>, 돌베개, 2006.
- 존 그레이,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이후, 2010.
- 장융, 존 핼리데이, <마오(상),(하)>, 까치글방, 2006.
- 김용우, <호모 파시스투스>, 책세상, 2005.
- 킴 스탠리 로빈슨, <쌀과 소금의 시대>, 열림원, 2007.
- 박명림,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나남, 1996.
- 찰스 암스트롱, <북조선 탄생>, 서해문집, 2006.

2. 영화(Movie)


- 드니 빌뇌브, <그을린 사랑>, 씨네큐브. 
- 실뱅 쇼메, <일루셔니스트>, CGV 대학로
- 홍상수, <북촌방향>, CGV 압구정 
- 박정범, <무산일기>, 하이퍼텍나다
- 라스 폰 트리에, <안티 크라이스트>, 씨네큐브
- 장훈, <고지전>, 노원 롯데시네마
- 김태일, <오월애>, CGV 대학로
- 양영희, <굿바이 평양>, 아리랑씨네센터

3. 애니메이션/웹툰 

- <K-ON> 1,2기 

 

-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1,2기

 

- <슬레이어즈>  1기, 2기 NEXT, 3기 TRY, 4기 R-evolution, Evolution-R

 


- 재활용, <연민의 굴레>
- 주호민, <신과함께>
- 태발, <프로젝트 X>
- 꼬마비, 노마비, <살인자ㅇ난감>
- 황준호, <학교가기 좋은 날>
- 정병식, <가족사진>

- 계란계란, <학원기이야담> 
- 루드비코, <인터뷰>
- 허영만, <말 위에서 달리는 무사>
- 정연식, <더 파이브>
- 마사토끼, <매치스틱 트웬티> 
- 팀 겟네임, <교수인형>  

- 주호민, <무한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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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1947-2011) 

"제일 좋은 사람들이 먼저 가버리는군요. 그것이 인생이죠." (페스트 中)
편히 쉬시길, 先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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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less Eight

2011/12/15 00:27 from 雜_앓음다움.



나의 끝나지 않는 8학기. Endless Eight. 
9월부터 12월까지 매일매일을 무한 루프중..

항상 시험 직전에 모든 것을 포기..
 뭐, 다시 반복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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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개인적인 기억의 단편을 상호연관된 조직을 이루도록 조립해 놓은 아상블라주이다. 기억의 범위는 지리적으로는 서울에서 울산에 이르며, 2010년 12월부터 11월까지의 시간을 아우르고 있다. 

  2011년, 나의 세계는 1월 11일 강남역에서 시작했다. 그날 참으로 많은 눈이 내렸다. 강남역의 눈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 

  1월, 울산 공업탑 앞에서 만났던 K. 올해 술을 너랑 같이 제일 많이 마셨구나. 항상 그렇듯, 즐거운 지적 자극으로 남아있다. '거의' 술에 취한 나를 데리고 창원까지 차로 모시고 가준  J. 올 해 초 너와 함께 갔었던 봉하마을과 이 떠오른다. 지금 있는 그 곳에서 원하는 바를 많이 이루길 바란다.  L과 신림동의 방을 함께 알아봤지만, L과의 동거는 성사되지 못했다. 아나키스트를 자처했던 L은 이제 행시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대영웅서사시 <은하영웅전설>을 다보았다. 기대한 2년만의 수강신청.

   이후 나는 서울을 벗어나지 못했다.  2월, P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축하인사를 해주고 싶었으나 만날 수가 없었다. <Relentless Revolution>. 이 자리를 빌려, 치맥으로 만족한 H의 호의에 감사드린다. 숱한 고민 끝에 어려운-하지만 오랫동안 생각해왔던-결정을 내렸다.

  2월 12일, 무바라크는 물러났고, 리비아에서는 내전이 본격화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찾아간 고등학교. 마주하기 힘든 기억을 되새겨 보았다. 민망할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는 여러 낙서들. 2월 19일. J는 꿈을 찾아 떠나갔다. 선생님이었던 또다른 L은 끝내, 군대에 갔다. 그와 함께 건국대학교에서 세종대학교까지 걸었다.  상암에서 1년만에 다시 만난 B. B가 언젠가 줄, 프랑스어판 <소립자>를 기대하고 있다.  
 
  학교로 돌아가는 일은, 두려운 일인 동시에 떨리는 일이었다. 3월 2일 내가 느낀 설렘. 정말 오랜만에 느낀 즐거움이었다. 첫 수업은 수요일 민족사회학과 북한연구. 하지만 글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하얀 백지에서 오는 두려움. H는 항상 부족한 나의 글을 읽어주었다. 그리 자주는 아니었지만, 신촌에서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로 조금이라도 보답이 되었길.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를 열심히 읽었다. 나는 좀 더 비관주의자가 되었고, 동시에 좀 더 낙천적이 되었다. 일본 대 지진을 보면서, 내가 딛고 서 있는 현실이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는 불안정한 것이라는 점을 또 다시 생각했다.  

  "교양은 전공처럼, 전공은 대학원처럼!"
2년 만에 학기를 시작하는 나의 야심찬 각오였다. 
 
  신촌의 봄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매번 '무악'과 '관악'을 이어준 택시 기사 아저씨들에게 감사한다. 연대 동문의 비밀을 알려준 S에게도. H와의 서문 맛집 탐방과 S와의 귀갓길은 즐거웠다. K의 수업을 들은 것은 올 해의 가장 좋은 선택 중 하나였다. 이것저것 참 많이 읽고 '표준'에 대하여 생각을 했다. 하지만 첫 시험 두 개는 완전히 죽을 쒔고 이를 기말에도 회복하지 못했다. 다른 K와 학회 활동에 열심히 참여했다. 벚꽃은 언젠가 지기 마련이다. 벚꽃이 질 때 <싱글즈>를 보았다.  
 
   내 생일날 오사마가 사살되었고, 그는 인도양에 수장되었다. 이젠 안녕. 오사마. <디 오서>. 지켜지기를 기원했지만, 지켜지지 못했던 10년의 약속. 유가네. 이음서점. 그리고 다시 <소립자>. 24. 

  오랜만에 발표를 했다. 내가 여전히 좋은 웅변가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 다음 발표는 너무 준비를 많이 해서 지나치게 시간이 길어졌다. 발표란 나에게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그 사람이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혹은 들어주는 척을 한다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이클 도일을 만났다. K가  소개한 M과 관련된 책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충격을 받아 나는 그 책을 누워서 읽었다. 광주를 생각하며, 5월 28일 <오월애>를 보았다. <인터내셔널>과 <동방홍>을 다시 들었다. 혁명에 대해 생각했다.

  5월은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갔고 기말고사가 다가왔다. 또다른 B가 무사히 돌아왔고, 우리는 모두 그의 귀환을 축하해주었다. B와 입구역까지 걸어가며 M의 이야기를 하면서, 대심문관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말고사와 리포트를 마쳤다. S가 나보고 결혼을 꼭 해야하고, 그것도 일찍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2시까지 술을 마셨고, 나는 입구역에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바보같은 짓이었다.  

   비가 정말 끊임없이 계속 내렸다. 강남은 침수되었다. 힘이 전혀 없었다. 빈혈과 더불어 여름에 나한테 오는 일종의 고질병이다. 프랑스어와 영어 공부는 진도가 전혀 나가지 못했다. 학원까지 다녀보았지만, 허사였다. 그 동안 <세계정치론>을 틈틈이 번역했다. 웹툰이라는 형식이 등장한 이후 웹상에 존재한 거의 대부분의 웹툰을 보았다. P는 '연민의 굴레'를 특히 좋아했다. 나 역시 그랬다. 정든 집을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나는 웹툰을 봤다. 그리고 나는 이제 더 이상 웹툰을 보지 않는다. 인류학 공부를 했다. 모스와 레비-스트로스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중학교 때 살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 때의 친구들은 더 이상 이 자리에 없지만, 공간의 탓일까, 내가 다시 어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중학교 때 즐겨듣던 노래로 MP3를 가득 채웠다. KIA 타이거즈는 끝없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다시 자전거를 즐겨타기 시작했다. P와 매일 아침 노원정보도서관을 다녔다. 중학교 때 끄적대던 여러 사랑 시집을 기증했다. 집은 그대로인데, 사람이 커져서, 처음으로 책을 누군가에게 팔아보았다. 슬픈 일이었다. <쌀과 소금의 시대>를 읽으면서 나만의 웹툰 콘티를 짰다. K가 군대에 갔다. M이 졸업했다. 진심으로 그의 졸업을 축하했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오면서 새벽부터 일어나는 생활을 시작했다. (취침시간은 그대로였다!) 매일 6시 10분 새벽 지하철을 타고 학교로 왔다. 마지막 2학기라는 이름으로, 21학점을 생애 처음으로 넣어보았다. 청강을 2과목이나 했지만, 이는 처음부터 말도 안되는 계획이었다. <세계정치론> 번역과 교열을 계속 진행했다. <연민의 굴레>가 끝이 났다. 다시 K를 만났고, 그와 <인도양문명사> 이야기를 했다. 민망했지만, 무언가 기대했던 작은 꿈을 하나 이룬 기분이었다. 

   자유민주주의를 생각하면서,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 테제를 음미했다. 1987과 1989. 자유민주주의의 외부를 쉬이 상상할 수 없는 나는 항상 '몰락'만을 경험했다는 생각을 했다. 9.11이 10주년이 되었다. 지금 나의 인생을 어느 정도 '결정'했던 사건. 강렬한 토마호크 미사일의 섬광. 그 후 10년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가? 내가 왜 지금 이 공부를 하고 있는 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졸업 논문 주제를 정했다.

    10월. 오랜만에 학교에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연애시대>와 <Once> OST가 어울리는 가을이었다. B가 하께 살자는 제안을 했다. 지하철을 오며가며 도스토예프스키를 진지하게 읽었다. 나는 항상 이반을 동경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이성이 아니라 삶 그 자체를 살아가는 알료샤를 동경하게 되었다. (물론 나는 절대로 알료샤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많이 졸았다. 인민의 '아편'을 만든 S가 사라졌다. 

  O에게 안 좋은 일이 일이 있었다. B와 J와 각자의 삶에 대해 평가를 내려주었다. 공통적으로 2008년이 그 기점이 되었다는 점이 신기했다. 장기 2008년은 계속된다. 나에게 이후의 삶은 큰 의미가 없을지도. <슬레이어즈>를 보면서 이 세계가 멸망하더라도 단 한 명에게 걸 수 있는 '희망'에 대해 생각했다. 카다피가 죽었다. 시작보다 중요한 것은 끝이다. 

  11월. 자살에 대해 생각했다. 이미 세계가 만들어져 있고, 누군가에 의해서 모든 것이 이미 말해진 것이라면, 과연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혹은 할 수 있는가. J가 나에게 던지는 커다란 질문이었다.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면, 왜 나는 지금 당장 자살하지 않는가라고 까뮈는 말할 것이다. 의미가 없는 세상에서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어려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 C가 많이 아파서 수술을 해야만했다. 1500. 다른 P가 결혼식을 올렸다. 

  정말 오랜만에 다시 영화를 보았고, 광화문과 종로를 K와 걸었다. 가을비인지 겨울비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비가 왔다. 항상 그렇듯 중간고사는 못 봤고, 과제들은 여전히 미리미리 하지 못했다. 시험기간만 오면, 컨디션은 최악인 것은 여전했다. 이 와중에 졸업 논문 주제가 통과되었고, 이제 나의 마지막 학부 2학기가 마무리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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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지옥

2011/11/25 01:39 from 知_알음다움.

  우리는 대체로 자유사상이야말로 자유를 막아내는 최고의 안전장치라고 말할 수 있다.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노예의 정신의 해방이 노예의 해방을 막는 최고의 방책이다. 노예에게 그가 자유로워지고 싶은지 아닌지 고민하라고 가르쳐보라. 그러면 그는 스스로를 해방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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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을 감당하기 어려워지면 공부하는 것이 가장 좋은 약이라는 사실을 그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책상에 앉아 어떻게 해서라도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해야 했다. 그는 자신의 붉은 색 서류철에서 노트를 꺼냈다. 그 노트에는 그리 많지 않은, 편집한 자료의 개요가 적혀 있었다. 끄림에서 지내다 할 일이 없어 지루해지면 정리하려던 노트였다. 그는 책상에 앉아 그 개요를 검토했다. 다시 평화롭고 온순하며 무심한 기분으로 돌아간 듯 했다. 개요가 적히 노트는 세상사의 무상함에 대한 사색으로 그를 이끌었다. 인생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그런 하찮거나 아주 평범한 이득을 위해 인생은 또 얼마나 많은 것을 강요하는 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예를 들어, 나이 마흔이 다 되어 강좌를 얻기 위해, 평범한 교수가 되기 위해, 시들고 지루하고 따분한 언어로 평범한, 그것도 남의 사상을 설명하기 위해, 한 마디로 평범한 학자의 지위에 오르기 위해, 꼬브린은 15년은 연구해야 했고, 밤낮없이 공부해야 했고,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아야 했고, 실패한 결혼 생활을 겪어야 했고, 기억하기도 싫은 온갖 어리석고 옳지 못한 행동을 저질러야 했다. 이제 꼬브린은 자기 자신이 아주 평범하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그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에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개요가 그를 완전히 그를 진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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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적 폭력

2011/11/17 02:22 from 美_아름다움.


闇よりもなお暗き者 夜よりもなお深き者

야미요리모나오쿠라키모노 요루요리모나오후카키모노

어둠보다도 더욱 어두운 자 밤보다도 더욱 깊은 자


混沌の海よ(混沌の海に) たゆたいし者(たゆたいし)

콘톤노우미요(콘톤노우미니) 타유타이시모노(타유타이시)

혼돈의 바다여 (혼돈의 바다에) 흔들리는 자 (흔들리는)


金色なりし闇の王

콘지키나리시야미노오오

금색으로 변하는 어둠의 왕이여


我ここに汝に願う 我ここに汝に誓う

와레코코니난지니네가우 와레코코니난지니치카우

나 여기서 그대에게 바란다 나 여기서 그대에게 맹세한다


我が前に立ちふさがりし すべての愚かなる者に

와가마에니타치후사가리시 스베테노오로카나루모노니

나의 앞을 막아서는 모든 어리석은 자들에게


我と汝が力もて 等しく滅びを與えんことを

와레토난지가치카라모테 히토시쿠호로비오아타엥코토오

나와 그대가 힘을 합쳐 다 같이 파멸을 부여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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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는 있는가? 아니면 이 그림에서처럼 현존하지 않는가?
<마오 없는 마오 그림>에서, 오히려 마오의 존재를 더 느낄 수 있는 역설. 

이 그림의 '원본'은 마오 시절 대량 유통되던, 동명의 그림. <마오 주석, 안위엔에 가다>,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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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2011/11/03 00:33 from 美_아름다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복음서 12 :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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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카다피

2011/10/21 02:57 from 雜_앓음다움.



   무아마르 카다피(1942.6.7-2011.10.20)가 드디어 전투 중에 사살되었다. 튀니지 청년 부아지지의 분신으로 시작된 중동 민주화 과정 속에, 한 지도자는 망명길(튀니지)을 떠났고, 다른 지도자는 법의 심판(이집트)을 받게 되었고,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는 결국 10월 20일을 기점으로 자신의 시간을 영원히 빼앗기게 되었다. 말년의 그가 보여준, '중동의 미친 개'로서의 카다피를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나, 리비아의 젊은 청년 카다피가 꿈꾸었을 세계에 공감했던 한 사람으로서, 그를 위한 글을 하나 쓴다.

   1942년, 카다피가 가난한 유목민의 아들로 태어났을 때, 리비아는 이탈리아의 속국이었다. 리비아는 1952년 유엔 결의안을 통해 독립을 했으나, 세누시 왕조의 이드리스 왕(1951-1969)이 통치하던 리비아는 혼란 그 자체였다. 1911년부터 1945년까지 이탈리아 제국의 식민지로,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유명한 롬멜의 전차전의 무대로 쑥대밭이 되어버린 리비아. 유엔 결의안으로 법적인 식민지의 지위로부터는 벗어났지만, 1959년 리비아에서 발견된 '검은 황금'은, 다시금 리비아를 서구 세력들의 새로운 식민지로 만들어버리고 있었다. 이드리스 왕은 무기력하기만 했고, 막대한 석유 이익의 떡고물은 리비아 국민이 아닌, 몇몇 외세와 결탁한 매판 자본가들의 수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어린 카다피는 가족들로부터 이드리스 왕이 아닌, 이탈리아를 상대로 전설적인 게릴라 전쟁을 벌인 우마르 무크타르. 소위 '사막의 라이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라났다. 사막의 라이온을 좋아했던 어린 소년은, 머리가 커지면서 가말 압둘 나세르 대통령의 '혁명철학'을 읽었고, 이집트 정부가 전 아랍을 향해 송출한 '아랍의 소리' 방송을 비밀리에 청취하며, 새로운 시대를 꿈꾸었다.

   1965년 사관학교를 졸업한 카다피는 영국에서 사관 연수를 받고 있었다. 마침 영국을 이드리스 국왕이 방문했는데, 의장대로 이드리스 왕과 영국 수상의 만남을 지켜본 카다피는 이드리스 왕이 영국 수상에게 굽실거리면서, 리비아의 이권을 팔아먹는 모습을 생생하게 목격한다.



  이 사건 이후, 카다피는 고국으로 귀환하여, 나세르의 선례를 따라 장교들을 조직하여, 1969년 9월 1일 국왕이 신병 치료 차 터키로 떠난 틈을 노려, 이드리스 왕의 리비아를 무너뜨렸다. 그의 나이 27살 때의 일이었다. 반외세, 반굴종, 사람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세상을 외친 그의 목소리는 전세계에 울려 퍼졌다. 서구식 대의민주주의도, 이슬람 원리주의, 소련식 마르크스주의도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수 없는 사상이라고 보았던 청년 카다피는, 모든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직접 민주주의에 가까운 '자마힐리아' 체제를 고안해냈다. 카다피의 생각에 공감했던 수많은 리비아 청년들은, 카다피의 녹색책을 한 손에 들고, 자마힐리아 체제의 토론에 참여했다. 몇몇 사람들의 손에서 결정되던 정책은, 수많은 사람들의 논쟁의 대상이 되었고, 국유화된 석유로부터 얻어지는 수입은 인민들의 복지에 사용되었다. 몇몇 왕족들의 사치에 쓰였던 리비아의 국부는, 리비아를 넘어 카다피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아프리카 해방, 아시아 해방을 외치는 수많은 단체들에게로 흘러들어갔다. 넬슨 만델라를 지원한 것도 카다피였다.



  항상 '대위'의 칭호를 달고, 리비아 혁명을 지휘한, 한 때 중동의 체 게바라라고 불렸던 청년 카다피. 결국 다른 많은 3세계 혁명가들처럼, 그의 최후는 '체 게바라'로서가 아니었고, 그가 꿈꾸었던 '아랍의 나폴레옹'이 아닌 우스꽝스러운 '나폴레옹 3세'로서 끝이 났다. 하지만 카다피 1인의 주도로 시작되었던 1969년 리비아 혁명은, 40년의 시간을 지나 수많은 리비아의 '청년 카다피'로 하여금, 2011년 리비아 혁명이 더욱 더 나아갈 수 있게 했다.  청년 카다피가 외친 것처럼 역사의 주인은 한 사람의 왕이 아니라, 민중들이었다. '리비아 자마힐리아'는 카다피의 녹색 책이 아니라, 2011년 리비아의 거리와 사막 속에 있었다.


  리비아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우마르 무크타르, 청년 카다피가 꿈꾸었을 '새로운 리비아'를 만들어내시길. 이번 내전으로 3만 이상의 큰 희생을 치른 그들의 상처를 애도하면서, 리비아의 미래에 건투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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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광장, 1945

2011/10/19 03:37 from 美_아름다움.


파시스트 독일을 무너뜨린, 소련의 힘.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 소련은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국가-당시 사람들의 희망이기도 했던-의 노래가, 애처롭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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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리나 세르게예브나!"

아르카디는 수줍어하는 듯하면서도 스스럼없이 말문을 열었다.

"당신과 한집에 있는 행복을 누리게 된 후로 당신과 여러 번 대화를 나누었지만, 아직 언급하지 않은 문제.... 내게는 아주 중요한 문제가 하나 남아있습니다. 어제 당신은 내가 여기서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죠."

그는 자기를 응시하는 카챠의 의문에 찬 눈길을 마주보기도 하고 피하기도 하면서 덧붙였다.

"실제로 나는 많은 면에서 변했습니다. 누구보다도 당신이 더 잘 알 겁니다. 사실, 이렇게 변한 것은 당신 때문이니까요."

"제가요?.... 제 덕분이라고요?...."

카챠가 말했다.

"이제 나는 이 곳에 처음 왔을 때처럼 거만한 애송이가 아닙니다."

아르카디가 말을 이었다.

"나는 스물셋이란 나이를 그냥 먹은 게 아닙니다. 여전히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진리를 위해 내 모든 힘을 바치려고 하지만, 예전에 이상을 찾았던 곳에서 내 이상을 찾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 훨씬 더 가까이 있는 것 같거든요. 지금껏 나는 자신을 몰랐고, 내 힘에도 맞지 않는 과제를 설정했었어요.... 그러나 최근에 나는 어떤 감정 덕분에 눈을 떴습니다. 내 표현이 그다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이해해주면 좋겠군요....."

카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아르카디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는 흥분된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그의 머리 위 자작나무 잎사귀 속에서 되새 한 마리가 태평하게 노래를 불렀다.

"정직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말하는 게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어떤 사람들과....한 마디로, 가까운 사람들과.... 그래서 나는.... 내 의도는...."

그러나 여기서 아르카디의 말은 어긋났다. 그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고 더듬거리다가 결국 입을 다물지 않으면 안 되었다. 카챠는 여전히 눈을 들지 않았다. 그가 왜 이런 말을 하는 지 이해하지 못하고 뭔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내가 당신을 놀라게 하는군요" 그는 다시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게다가 이 감정은 어떤 의미에서.... 어떤 의미에서.... 당신과 관련이 있으니까요. 당신은 어제 진지함이 부족하다고 날 비난한 걸 기억하지요?"

아르카디는 늪에 빠진 사람이 발을 옮길 때마다 더 깊이 빠져드는 것을 느끼면서도 빨리 건너려는 생각에서 서둘러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 표정으로 말을 계속했다.

"이런 비난은 종종 젊은이들을 향해서.... 퍼부어지지죠.... 이미 비난의 구실이 없어졌을 때조차 말입니다. 만약 내게 더 많은 자신감이 있다면.....(제발 날 도와줘요! 도와달라고! )"

아르카디는 필사적이었지만 카챠는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만약 내가 기대할 수만 있다면......"

아르카디는 카챠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녀는 여전히 같은 자세였지만 머리는 숙이고 있었다.

"카테리나 세르게예브나."

아르카디는 두 손을 꽉 움켜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영원히, 그리고 변함없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 외에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 말을 하고 싶었고, 당신의 의견을 듣고 싶었고, 당신에게 청혼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부자가 아니지만 어떤 희생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왜 대답이 없습니까? 당신은 날 믿지 않나요? 내가 경솔하게 말한다고 생각하나요? 요 며칠 동안을 생각해보세요! 오래전에 다른 모든 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걸 당신은 진정 믿지 못하겠습니까? 날 좀 보세요. 그리고 한 마디만 해주세요....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사랑해요.... 날 믿어줘요!"

카챠는 엄숙하고 맑은 눈으로 아르카디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한참 생각하고 난 후 보일락 말락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예."



투르게네프 글을 읽다 보면, 나 자신이 꼭 그의 환생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적당히 도식적이면서, 적당히 깔끔하면서도, 적당히 사색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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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

역사 선생에 관해서도 지적할 게 있습니다. 엄청나게 박식한 것으로 보아서는 그가 타고난 학자라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만, 제정신을 잃을 정도로 열을 내며 강의를 한다 이 말입니다. 언젠가 그의 강의를 들었는데 아시리아인들과 바빌로니아인들에 관해 강의할 때까지는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이르렀을 때 그의 행태가 어땠는지 입에 담기도 민망할 지경입니다. 나는 진짜로 불이 난 줄만 알았소! 교단에서 뛰어내려 의자로 바닥을 내리치더군요. 물론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영웅이지만, 대체 의자는 왜 부수느냐 이 말입니다? 그 때문에 국고에 손실을 입었습니다. 

루카 루키치

그 사람은 성질이 정말 불 같습니다! 제가 여러 차례 주의를 주었습니다만, 이렇게 대꾸하더군요. "아무리 뭐라 하셔도 저는 학문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을 겁니다."

군수

그렇습니다. 정말 불가사의한 운명의 법칙이란 그런 것입니다. 똑똑한 사람이란, 술주정뱅이이거나 아니면 성인이라도 돼야 참아줄 그런 꼴사나운 표정을 짓는단 말입니다.

루카 루키치

학자가 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죠! 모든 게 염려스러울 따름입니다. 하나같이 남의 일에 간섭하고, 자신이 똑똑한 사람이라는 걸 만나는 사람마다 과시하고 싶어 안달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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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의 굴레.

2011/09/26 23:59 from 美_아름다움.



2009년부터 즐겨보던, 재활용 작가의 월요웹툰 <연민의 굴레>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앞으로 누가 나에게 '구조주의적 사유'를 묻거든, 서슴없이 연민의 굴레를 추천하겠다. 개개의 인물로서의 연민이 아닌, 연민을 둘러싼 '굴레'를 이리 잘 재미있게 표현한 만화는 없었다. (이 그림에도 연민은 없다..) <연민의 굴레>와 함께 참으로 즐거운 3년이었다. 앞으로 재활용 작가의 행보를 주의깊게 살펴보겠다. 재활용은 재활용되어야한다!


http://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58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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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2011/08/24 19:52 from 知_알음다움.
 삼장법사

 "오공아, 부처님이 계신 서역까지는 얼마나 먼 게냐?"

 손오공

 "젊어서 길을 떠나 늙을 때까지,

 그리고 다시 젊음이 돌아올 때까지 걸어야 하며,

 이런 순환을 천 번 거친 뒤에도 가고자 하는 곳에 이르기가

 어려움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굳은 의지로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불성을 깨닫고,

 생각의 가지 하나하나가 기억 속 근원으로 돌아가면,

 그 때 비로소 영산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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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2011/07/21 12:22 from 雜_앓음다움.


만성 저혈압과 빈혈을 앓고 있다.
매 여름 장마가 끝난 무더위 이 맘 때 쯤이면 나는 거의 좀비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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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비판

2011/05/31 03:22 from 雜_앓음다움.
'아이폰'을 위시로 한 스마트폰은 21세기 인민의 '아편'이다. 동방예의지국은 이제 아편으로 가득 찼다. 스마트폰은 1초의 무료함도 견디지 못하는 안타까운 피조물들의 한숨을 먹고 살며, 무정한 세계의 감정이며, 영혼 없는 상황의 영혼이다. 우리는 새로운 아편전쟁을 준비해야한다. 그 때 나는 임칙서가 될 것이다.
- ㅇ.ㅊ.ㅈ(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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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intelligence goes up, happiness goes down. See, I made a graph…I make lots of graphs…” — Lisa Simpson. The Simpsons. Episode 257.

Sapere Aude? Ignorance is Bl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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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의 철학자들은 세상을 '변혁'시키려고만 해왔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오롯이 '번역'하는 것이다. 
 
- ㅇㅊㅈ(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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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革命)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김수영, <거대한 뿌리>,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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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

2011/04/13 00:35 from 美_아름다움.

  오, 그 많은 애지자(愛知者)들. 그가 그동안 그렇게도 심취했고 매혹됐던 그 정신의 장자(長者)들. 무엇이든 인간의 이름으로 이루기를 원하며, 그들은 지금껏 인간을 위압해 오던 우주의 신비와 미지에 대담하게 도전했지만, 결국 자신이 찾고 있는 신을 위해 무엇을 줄 수 있었던 말인가. 기껏 그들이 줄 수 있었던 것은 멀리 있는 별을 바라보다 발밑에 있는 우물에 빠지는 식의 현실에서 유리된 독단이나 사물의 외관에 현혹되지 않게 스스로의 눈을 뽑는다는 식의 왜곡된 실제에서 출발한 가설이었다. 수의 엄밀함에 턱없이 매달리면서도 콩과 염통 따위에 기이한 미신을 걸고, 디오니소스의 광기에 젖어 용암이 들끓는 분화구에 몸을 던졌으며, 유물의 벼랑 가를 서성이거나 끝 모를 회의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비록 한 무리의 애지자가 아직도 진지하게 신의 문제를 논의하고 있고, 그들 중 몇몇은 헬라적 사유에 히브리적 신 개념을 접목시키는 데까지 이르고 있지만, 그런 창백하고 양피지 냄새나는 관념이 신이 살아 숨쉬는 인간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오히려 아하스 페르츠가 그 모든 이들에게서 더 자주 보게 된 것은 스스로를 지나치게 믿은 나머지 신 없는 세계에 살게 될 인간의 고독과 허무뿐이었다.


  돌아가자, 헛된 헤맴은 이것으로 넉넉하다. 이제는 자기 속으로 돌아가 침잠할 때이며, 새로운 개안을 기다려 실체로서의 신과 마주할 때이다. 내가 신을 찾아 떠날 때가 아니라, 신이 나를 찾아올 때이며 뒤쫒을 때가 아니라 마중할 때이다.


  신은 반드시 내 길고 애절한 부름에 지난 반생의 쉬임없는 추구에 응하실 것이다.


  마침내 아하스 페르츠는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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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뜬자

2011/03/11 11:49 from 雜_앓음다움.

모든 사람이 두 눈을 뽑아버린다면, 자본주의는 붕괴할 것이다.

우리는 눈이 멀겠지만, 전혀 다른 세계에 눈을 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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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s misery in all I hear and see

From people on TV

After their tea when life begins again

They'll be happier than me


There are a thousand meals being made on Saturday

From the view I saw today

I took a bet inside the launderette

With a girl from Wallasey


She spoke in dialect I could not understand

But one thing that she made clear

There was no coming on to her

There was no way


(간주를 주의 깊게 들어봐요)


There's misery in all I hear and see

From people on TV

After their tea when life begins again

They'll be happier than me


There are a thousand meals being made on Saturday

From the view I saw today

I took a bet inside the launderette

With a girl from Wallasey


She spoke in dialect I could not understand

But one thing that she made clear

There was no coming on to her

There was no intellect

That she could respect

If it couldn't see

That the girl just wants to be

Left alone with Marx and Engels for a while

She's writing in the style

Of any riot 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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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2011/02/14 12:27 from 雜_앓음다움.

 요즈음 나는 외국어 관련 일을 하느라고 무척이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하나는 <Relentless Revolution>이라는 영어책의 후반부 번역을 하고 있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매 주 프랑스어로 300자 남짓의 글을 쓰는 것이다.


  나는 이번 번역 일 전에도 간단한 번역 업무를 몇 번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감각 유지'를 위해 매 달 적어도 한 권 정도는 영어 원서를 읽는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비문을 찾는 교열이 아니라, 내가 직접 나서서 번역 일을 맡으니, 지금까지 내가 번역이라는 작업을 너무나 쉽게 생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어로 쓰인 글을 술술 어느 정도 뜻을 파악하면서 읽는다는 것과 번역은 전혀 다른 작업이다. 나는 1급 통역사처럼 영어 글의 핵심을 잘 짚어서 한국 사회에 전달하고 1급 번역사처럼 번역투가 아닌 아름답고 유려한 한글 문장으로 바꾸어내고 싶었지만, 이는 능력이 부족한 나로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그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영어로 생각을 할 수 없다. 영어는 한번도 나의 삶 속에서 한국어의 지위를 위협한 적이 없다. 영어는 그냥 꽤 잘하고 어릴 때부터 익숙한 외국어일 뿐이다. 그렇기에 매번 난관에 부딪히는 것이 번역하는 문장의 뜻은 알겠지만, 그것이 지니고 있는 오묘한 느낌이나 필자 개인의 독특하고 미묘한 문체까지 파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가끔 번역하는 문장과 번역된 문장의 미묘한 균열이 생기게 된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이러한 번역들이 모여 설령 오역은 아니더라도, 독자의 이해를 방해한다는 점에서 번역을 맡은 이로서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는 아직 내 능력 밖인 것을!


  이와 비슷한 반대의 경우도 발생한다. 나는 요즈음 매 주 프랑스어로 200-300자 남짓의 사회과학적 에세이를 쓰고 있다. 다른 친구들이 대개 빠르게 쓸 수 있는 '고시체'를 고집한 반면, 나는 아름답고 정확한 프랑스어를 쓰고 싶었다. 매주 좀 익숙한 표현을 쓰기 싫어서, 프랑스어 홈페이지가 잘 되어 있는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나, 프랑스어 기사체의 최고봉 르몽드, 프랑스 엥포, 유로뉴스 등에 들어가서 그들의 표현을 흉내내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프랑스어가 구속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프랑스어 역시 항상 내 바깥에 있었고, 나는 프랑스어로도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것을 프랑스어로 쓰는 것이 아니라, 내 프랑스어 구사력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글을 쓸 수 있었다. 하루는 '21세기 유엔의 역할'이라는 주제가 나왔다. 평소에도 많이 생각해 본 주제였지만, 막상 한국어로 하루 종일 떠들 수 있는 주제가 나오니, 프랑스어로 표현하는 것이 난망해졌다. 생각한 크기와 표현된 크기가 너무나도 불일치했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지만, 그것을 모두 다 프랑스어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것은 글이 아니라, 좋게 봐주어도 하나의 기사일 뿐이었다. 아무런 주장도 없었고, 단순한 사실만을 기록한 쓰레기글이었다. 내가 프랑스어로 쓴 이 글을 읽어본다는 것은 얼마나 맞갖잖은 것인지!


  결국 나는 그 글을 제출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어려움을 경험적으로 목도하고, 나의 부족함을 깨달으면서 불안감이 엄습해들었다. 결국 영어나 프랑스어는 내가 제일 친숙한 외국어인데, 이것조차도 자유자재로 구사하지 못하고 영어와 프랑스어로 표현이 가능한 내 생각만 말하고 쓸 수 있다면... 결국 남들(외국인)이 보는 것은 내 생각의 깊이가 아니라, 그것이 발화된 형태일텐데.... 너무 화가 났다. 간단한 회화 이런 것에는 큰 관심이 없다. 프랑스어 하나도 못해도 돈만 넉넉하다면 파리에서 평생을 살 수 있다. 대도시의 삶은 현재 세계 어느 도시나 비슷하다. 다만, 내 생각을 영어나 프랑스어로 100% 혹은 영어와 프랑스어의 묘미를 살려 101% 까지 표현을 하지 못하는 내 상황에 정말 울화통이 터졌다.


  하지만 내가 열심히 능력을 연마한다 하더라도 영어로 <순교자>의 김은국이나 현재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성복 교수, <담론과 해방>을 쓴 김경만만큼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의 지적 작업을 프랑스어로 한 루시앵 골드만이나 줄리아 크리스테바 같은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야 프랑스 땅을 밟았지만, 그 사람들은 동유럽의 조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부터 프랑스어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이다. 반면에, 내 유년기를 둘러싸고 있던 언어는 오직 한국어 뿐이었다. 나는 그것을 절대로 행운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건 내 운명이다. 성인이 돼서 배운 언어로도 문학사가 기록할 만한 아름다운 글을 쓴 사람들이 물론 아예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예외적인 재능과 열정을 지닌 사람들이다. 내게는 그런 재능과 열정이 없다. 그것 역시 행운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것조차도 내 운명이다.


  나는 대학시절에 몇 개의 외국어를 배웠다. 너무 넓게 벌여놓아 깊게 배운 언어는 하나도 없었고,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그 때의 노력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지만, 아무튼 그 시절에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이 즐거웠다. 대학 입학 전에 사회의식의 과잉으로 평등의 언어 에스페란토어를 친구와 함께 열심히 공부했고, Skype를 이용해서 세계 각국 에스페란티들과 인터넷 대화를 열심히 하기도 했었다. 대학에서는 서양 중세사에 관심을 갖게 되어, 중세의 보편 언어인 라틴어와 아랍어를 배웠다. 물론 이제는 문자를 읽는 정도 수준에 그치지만, 남들이 잘 쓰지 않는 '죽은 언어'인 라틴어와 한국 사회에서 지극히 생소한 아랍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매우 짜릿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에스파냐어에는 멕시코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한 3개월 쯤 푹 빠져 지냈다.


  이런 저런 언어에 대해서는 배웠지만 한 가지 언어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채 말들의 바다에서 물장구를 치다 보니, 어느 새 사회가 내 눈 앞으로 다가왔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까? 요즈음 나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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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 땐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는 기억 때문에

슬퍼질 것이다

 

수많은 시간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꽃들이 햇살을 어떻게 받는지

꽃들이 어둠을 어떻게 익히는지

외면한 채 한 곳을 바라보며

고작 버스나 기다렸다는 기억에

목이 멜 것이다

 

때론 화를 내며 때론 화도 내지 못하며

무엇인가를 한없이 기다렸던 기억 때문에

목이 멜 것이다

 

내가 정말 기다린 것들은

너무 늦게 오거나 아예 오지 않아

그 존재마저 잊히는 날들이 많았음을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다

 

기다리던 것이 왔을 때는

상한 마음을 곱씹느라

몇 번이나 그냥 보내면서

삶이 웅덩이 물처럼 말라버렸다는

기억 때문에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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