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마르 카다피(1942.6.7-2011.10.20)가 드디어 전투 중에 사살되었다. 튀니지 청년 부아지지의 분신으로 시작된 중동 민주화 과정 속에, 한 지도자는 망명길(튀니지)을 떠났고, 다른 지도자는 법의 심판(이집트)을 받게 되었고,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는 결국 10월 20일을 기점으로 자신의 시간을 영원히 빼앗기게 되었다. 말년의 그가 보여준, '중동의 미친 개'로서의 카다피를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나, 리비아의 젊은 청년 카다피가 꿈꾸었을 세계에 공감했던 한 사람으로서, 그를 위한 글을 하나 쓴다.
1942년, 카다피가 가난한 유목민의 아들로 태어났을 때, 리비아는 이탈리아의 속국이었다. 리비아는 1952년 유엔 결의안을 통해 독립을 했으나, 세누시 왕조의 이드리스 왕(1951-1969)이 통치하던 리비아는 혼란 그 자체였다. 1911년부터 1945년까지 이탈리아 제국의 식민지로,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유명한 롬멜의 전차전의 무대로 쑥대밭이 되어버린 리비아. 유엔 결의안으로 법적인 식민지의 지위로부터는 벗어났지만, 1959년 리비아에서 발견된 '검은 황금'은, 다시금 리비아를 서구 세력들의 새로운 식민지로 만들어버리고 있었다. 이드리스 왕은 무기력하기만 했고, 막대한 석유 이익의 떡고물은 리비아 국민이 아닌, 몇몇 외세와 결탁한 매판 자본가들의 수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어린 카다피는 가족들로부터 이드리스 왕이 아닌, 이탈리아를 상대로 전설적인 게릴라 전쟁을 벌인 우마르 무크타르. 소위 '사막의 라이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라났다. 사막의 라이온을 좋아했던 어린 소년은, 머리가 커지면서 가말 압둘 나세르 대통령의 '혁명철학'을 읽었고, 이집트 정부가 전 아랍을 향해 송출한 '아랍의 소리' 방송을 비밀리에 청취하며, 새로운 시대를 꿈꾸었다.
1965년 사관학교를 졸업한 카다피는 영국에서 사관 연수를 받고 있었다. 마침 영국을 이드리스 국왕이 방문했는데, 의장대로 이드리스 왕과 영국 수상의 만남을 지켜본 카다피는 이드리스 왕이 영국 수상에게 굽실거리면서, 리비아의 이권을 팔아먹는 모습을 생생하게 목격한다.
이 사건 이후, 카다피는 고국으로 귀환하여, 나세르의 선례를 따라 장교들을 조직하여, 1969년 9월 1일 국왕이 신병 치료 차 터키로 떠난 틈을 노려, 이드리스 왕의 리비아를 무너뜨렸다. 그의 나이 27살 때의 일이었다. 반외세, 반굴종, 사람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세상을 외친 그의 목소리는 전세계에 울려 퍼졌다. 서구식 대의민주주의도, 이슬람 원리주의, 소련식 마르크스주의도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수 없는 사상이라고 보았던 청년 카다피는, 모든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직접 민주주의에 가까운 '자마힐리아' 체제를 고안해냈다. 카다피의 생각에 공감했던 수많은 리비아 청년들은, 카다피의 녹색책을 한 손에 들고, 자마힐리아 체제의 토론에 참여했다. 몇몇 사람들의 손에서 결정되던 정책은, 수많은 사람들의 논쟁의 대상이 되었고, 국유화된 석유로부터 얻어지는 수입은 인민들의 복지에 사용되었다. 몇몇 왕족들의 사치에 쓰였던 리비아의 국부는, 리비아를 넘어 카다피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아프리카 해방, 아시아 해방을 외치는 수많은 단체들에게로 흘러들어갔다. 넬슨 만델라를 지원한 것도 카다피였다.
항상 '대위'의 칭호를 달고, 리비아 혁명을 지휘한, 한 때 중동의 체 게바라라고 불렸던 청년 카다피. 결국 다른 많은 3세계 혁명가들처럼, 그의 최후는 '체 게바라'로서가 아니었고, 그가 꿈꾸었던 '아랍의 나폴레옹'이 아닌 우스꽝스러운 '나폴레옹 3세'로서 끝이 났다. 하지만 카다피 1인의 주도로 시작되었던 1969년 리비아 혁명은, 40년의 시간을 지나 수많은 리비아의 '청년 카다피'로 하여금, 2011년 리비아 혁명이 더욱 더 나아갈 수 있게 했다. 청년 카다피가 외친 것처럼 역사의 주인은 한 사람의 왕이 아니라, 민중들이었다. '리비아 자마힐리아'는 카다피의 녹색 책이 아니라, 2011년 리비아의 거리와 사막 속에 있었다.
리비아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우마르 무크타르, 청년 카다피가 꿈꾸었을 '새로운 리비아'를 만들어내시길. 이번 내전으로 3만 이상의 큰 희생을 치른 그들의 상처를 애도하면서, 리비아의 미래에 건투를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