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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2011/02/14 12:27 from 雜_앓음다움.

 요즈음 나는 외국어 관련 일을 하느라고 무척이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하나는 <Relentless Revolution>이라는 영어책의 후반부 번역을 하고 있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매 주 프랑스어로 300자 남짓의 글을 쓰는 것이다.


  나는 이번 번역 일 전에도 간단한 번역 업무를 몇 번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감각 유지'를 위해 매 달 적어도 한 권 정도는 영어 원서를 읽는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비문을 찾는 교열이 아니라, 내가 직접 나서서 번역 일을 맡으니, 지금까지 내가 번역이라는 작업을 너무나 쉽게 생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어로 쓰인 글을 술술 어느 정도 뜻을 파악하면서 읽는다는 것과 번역은 전혀 다른 작업이다. 나는 1급 통역사처럼 영어 글의 핵심을 잘 짚어서 한국 사회에 전달하고 1급 번역사처럼 번역투가 아닌 아름답고 유려한 한글 문장으로 바꾸어내고 싶었지만, 이는 능력이 부족한 나로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그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영어로 생각을 할 수 없다. 영어는 한번도 나의 삶 속에서 한국어의 지위를 위협한 적이 없다. 영어는 그냥 꽤 잘하고 어릴 때부터 익숙한 외국어일 뿐이다. 그렇기에 매번 난관에 부딪히는 것이 번역하는 문장의 뜻은 알겠지만, 그것이 지니고 있는 오묘한 느낌이나 필자 개인의 독특하고 미묘한 문체까지 파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가끔 번역하는 문장과 번역된 문장의 미묘한 균열이 생기게 된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이러한 번역들이 모여 설령 오역은 아니더라도, 독자의 이해를 방해한다는 점에서 번역을 맡은 이로서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는 아직 내 능력 밖인 것을!


  이와 비슷한 반대의 경우도 발생한다. 나는 요즈음 매 주 프랑스어로 200-300자 남짓의 사회과학적 에세이를 쓰고 있다. 다른 친구들이 대개 빠르게 쓸 수 있는 '고시체'를 고집한 반면, 나는 아름답고 정확한 프랑스어를 쓰고 싶었다. 매주 좀 익숙한 표현을 쓰기 싫어서, 프랑스어 홈페이지가 잘 되어 있는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나, 프랑스어 기사체의 최고봉 르몽드, 프랑스 엥포, 유로뉴스 등에 들어가서 그들의 표현을 흉내내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프랑스어가 구속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프랑스어 역시 항상 내 바깥에 있었고, 나는 프랑스어로도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것을 프랑스어로 쓰는 것이 아니라, 내 프랑스어 구사력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글을 쓸 수 있었다. 하루는 '21세기 유엔의 역할'이라는 주제가 나왔다. 평소에도 많이 생각해 본 주제였지만, 막상 한국어로 하루 종일 떠들 수 있는 주제가 나오니, 프랑스어로 표현하는 것이 난망해졌다. 생각한 크기와 표현된 크기가 너무나도 불일치했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지만, 그것을 모두 다 프랑스어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것은 글이 아니라, 좋게 봐주어도 하나의 기사일 뿐이었다. 아무런 주장도 없었고, 단순한 사실만을 기록한 쓰레기글이었다. 내가 프랑스어로 쓴 이 글을 읽어본다는 것은 얼마나 맞갖잖은 것인지!


  결국 나는 그 글을 제출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어려움을 경험적으로 목도하고, 나의 부족함을 깨달으면서 불안감이 엄습해들었다. 결국 영어나 프랑스어는 내가 제일 친숙한 외국어인데, 이것조차도 자유자재로 구사하지 못하고 영어와 프랑스어로 표현이 가능한 내 생각만 말하고 쓸 수 있다면... 결국 남들(외국인)이 보는 것은 내 생각의 깊이가 아니라, 그것이 발화된 형태일텐데.... 너무 화가 났다. 간단한 회화 이런 것에는 큰 관심이 없다. 프랑스어 하나도 못해도 돈만 넉넉하다면 파리에서 평생을 살 수 있다. 대도시의 삶은 현재 세계 어느 도시나 비슷하다. 다만, 내 생각을 영어나 프랑스어로 100% 혹은 영어와 프랑스어의 묘미를 살려 101% 까지 표현을 하지 못하는 내 상황에 정말 울화통이 터졌다.


  하지만 내가 열심히 능력을 연마한다 하더라도 영어로 <순교자>의 김은국이나 현재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성복 교수, <담론과 해방>을 쓴 김경만만큼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의 지적 작업을 프랑스어로 한 루시앵 골드만이나 줄리아 크리스테바 같은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야 프랑스 땅을 밟았지만, 그 사람들은 동유럽의 조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부터 프랑스어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이다. 반면에, 내 유년기를 둘러싸고 있던 언어는 오직 한국어 뿐이었다. 나는 그것을 절대로 행운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건 내 운명이다. 성인이 돼서 배운 언어로도 문학사가 기록할 만한 아름다운 글을 쓴 사람들이 물론 아예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예외적인 재능과 열정을 지닌 사람들이다. 내게는 그런 재능과 열정이 없다. 그것 역시 행운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것조차도 내 운명이다.


  나는 대학시절에 몇 개의 외국어를 배웠다. 너무 넓게 벌여놓아 깊게 배운 언어는 하나도 없었고,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그 때의 노력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지만, 아무튼 그 시절에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이 즐거웠다. 대학 입학 전에 사회의식의 과잉으로 평등의 언어 에스페란토어를 친구와 함께 열심히 공부했고, Skype를 이용해서 세계 각국 에스페란티들과 인터넷 대화를 열심히 하기도 했었다. 대학에서는 서양 중세사에 관심을 갖게 되어, 중세의 보편 언어인 라틴어와 아랍어를 배웠다. 물론 이제는 문자를 읽는 정도 수준에 그치지만, 남들이 잘 쓰지 않는 '죽은 언어'인 라틴어와 한국 사회에서 지극히 생소한 아랍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매우 짜릿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에스파냐어에는 멕시코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한 3개월 쯤 푹 빠져 지냈다.


  이런 저런 언어에 대해서는 배웠지만 한 가지 언어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채 말들의 바다에서 물장구를 치다 보니, 어느 새 사회가 내 눈 앞으로 다가왔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까? 요즈음 나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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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Xellos okay501 트랙백 0 : 댓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