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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

2011/04/13 00:35 from 美_아름다움.

  오, 그 많은 애지자(愛知者)들. 그가 그동안 그렇게도 심취했고 매혹됐던 그 정신의 장자(長者)들. 무엇이든 인간의 이름으로 이루기를 원하며, 그들은 지금껏 인간을 위압해 오던 우주의 신비와 미지에 대담하게 도전했지만, 결국 자신이 찾고 있는 신을 위해 무엇을 줄 수 있었던 말인가. 기껏 그들이 줄 수 있었던 것은 멀리 있는 별을 바라보다 발밑에 있는 우물에 빠지는 식의 현실에서 유리된 독단이나 사물의 외관에 현혹되지 않게 스스로의 눈을 뽑는다는 식의 왜곡된 실제에서 출발한 가설이었다. 수의 엄밀함에 턱없이 매달리면서도 콩과 염통 따위에 기이한 미신을 걸고, 디오니소스의 광기에 젖어 용암이 들끓는 분화구에 몸을 던졌으며, 유물의 벼랑 가를 서성이거나 끝 모를 회의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비록 한 무리의 애지자가 아직도 진지하게 신의 문제를 논의하고 있고, 그들 중 몇몇은 헬라적 사유에 히브리적 신 개념을 접목시키는 데까지 이르고 있지만, 그런 창백하고 양피지 냄새나는 관념이 신이 살아 숨쉬는 인간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오히려 아하스 페르츠가 그 모든 이들에게서 더 자주 보게 된 것은 스스로를 지나치게 믿은 나머지 신 없는 세계에 살게 될 인간의 고독과 허무뿐이었다.


  돌아가자, 헛된 헤맴은 이것으로 넉넉하다. 이제는 자기 속으로 돌아가 침잠할 때이며, 새로운 개안을 기다려 실체로서의 신과 마주할 때이다. 내가 신을 찾아 떠날 때가 아니라, 신이 나를 찾아올 때이며 뒤쫒을 때가 아니라 마중할 때이다.


  신은 반드시 내 길고 애절한 부름에 지난 반생의 쉬임없는 추구에 응하실 것이다.


  마침내 아하스 페르츠는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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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Xellos okay501 트랙백 0 :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