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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2/30 ㄱㅣㅁ ㄱ ㅡ ㄴ ㅌ ㅐ
- 2011/12/15 Endless Eight
- 2011/12/01 말하라, 므네모시네. (1)
이 글은 개인적인 기억의 단편을 상호연관된 조직을 이루도록 조립해 놓은 아상블라주이다. 기억의 범위는 지리적으로는 서울에서 울산에 이르며, 2010년 12월부터 11월까지의 시간을 아우르고 있다.
2011년, 나의 세계는 1월 11일 강남역에서 시작했다. 그날 참으로 많은 눈이 내렸다. 강남역의 눈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
1월, 울산 공업탑 앞에서 만났던 K. 올해 술을 너랑 같이 제일 많이 마셨구나. 항상 그렇듯, 즐거운 지적 자극으로 남아있다. '거의' 술에 취한 나를 데리고 창원까지 차로 모시고 가준 J. 올 해 초 너와 함께 갔었던 봉하마을과 이 떠오른다. 지금 있는 그 곳에서 원하는 바를 많이 이루길 바란다. L과 신림동의 방을 함께 알아봤지만, L과의 동거는 성사되지 못했다. 아나키스트를 자처했던 L은 이제 행시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대영웅서사시 <은하영웅전설>을 다보았다. 기대한 2년만의 수강신청.
이후 나는 서울을 벗어나지 못했다. 2월, P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축하인사를 해주고 싶었으나 만날 수가 없었다. <Relentless Revolution>. 이 자리를 빌려, 치맥으로 만족한 H의 호의에 감사드린다. 숱한 고민 끝에 어려운-하지만 오랫동안 생각해왔던-결정을 내렸다.
2월 12일, 무바라크는 물러났고, 리비아에서는 내전이 본격화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찾아간 고등학교. 마주하기 힘든 기억을 되새겨 보았다. 민망할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는 여러 낙서들. 2월 19일. J는 꿈을 찾아 떠나갔다. 선생님이었던 또다른 L은 끝내, 군대에 갔다. 그와 함께 건국대학교에서 세종대학교까지 걸었다. 상암에서 1년만에 다시 만난 B. B가 언젠가 줄, 프랑스어판 <소립자>를 기대하고 있다.
학교로 돌아가는 일은, 두려운 일인 동시에 떨리는 일이었다. 3월 2일 내가 느낀 설렘. 정말 오랜만에 느낀 즐거움이었다. 첫 수업은 수요일 민족사회학과 북한연구. 하지만 글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하얀 백지에서 오는 두려움. H는 항상 부족한 나의 글을 읽어주었다. 그리 자주는 아니었지만, 신촌에서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로 조금이라도 보답이 되었길.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를 열심히 읽었다. 나는 좀 더 비관주의자가 되었고, 동시에 좀 더 낙천적이 되었다. 일본 대 지진을 보면서, 내가 딛고 서 있는 현실이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는 불안정한 것이라는 점을 또 다시 생각했다.
"교양은 전공처럼, 전공은 대학원처럼!" 2년 만에 학기를 시작하는 나의 야심찬 각오였다.
신촌의 봄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매번 '무악'과 '관악'을 이어준 택시 기사 아저씨들에게 감사한다. 연대 동문의 비밀을 알려준 S에게도. H와의 서문 맛집 탐방과 S와의 귀갓길은 즐거웠다. K의 수업을 들은 것은 올 해의 가장 좋은 선택 중 하나였다. 이것저것 참 많이 읽고 '표준'에 대하여 생각을 했다. 하지만 첫 시험 두 개는 완전히 죽을 쒔고 이를 기말에도 회복하지 못했다. 다른 K와 학회 활동에 열심히 참여했다. 벚꽃은 언젠가 지기 마련이다. 벚꽃이 질 때 <싱글즈>를 보았다.
내 생일날 오사마가 사살되었고, 그는 인도양에 수장되었다. 이젠 안녕. 오사마. <디 오서>. 지켜지기를 기원했지만, 지켜지지 못했던 10년의 약속. 유가네. 이음서점. 그리고 다시 <소립자>. 24.
오랜만에 발표를 했다. 내가 여전히 좋은 웅변가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 다음 발표는 너무 준비를 많이 해서 지나치게 시간이 길어졌다. 발표란 나에게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그 사람이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혹은 들어주는 척을 한다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이클 도일을 만났다. K가 소개한 M과 관련된 책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충격을 받아 나는 그 책을 누워서 읽었다. 광주를 생각하며, 5월 28일 <오월애>를 보았다. <인터내셔널>과 <동방홍>을 다시 들었다. 혁명에 대해 생각했다.
5월은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갔고 기말고사가 다가왔다. 또다른 B가 무사히 돌아왔고, 우리는 모두 그의 귀환을 축하해주었다. B와 입구역까지 걸어가며 M의 이야기를 하면서, 대심문관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말고사와 리포트를 마쳤다. S가 나보고 결혼을 꼭 해야하고, 그것도 일찍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2시까지 술을 마셨고, 나는 입구역에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바보같은 짓이었다.
비가 정말 끊임없이 계속 내렸다. 강남은 침수되었다. 힘이 전혀 없었다. 빈혈과 더불어 여름에 나한테 오는 일종의 고질병이다. 프랑스어와 영어 공부는 진도가 전혀 나가지 못했다. 학원까지 다녀보았지만, 허사였다. 그 동안 <세계정치론>을 틈틈이 번역했다. 웹툰이라는 형식이 등장한 이후 웹상에 존재한 거의 대부분의 웹툰을 보았다. P는 '연민의 굴레'를 특히 좋아했다. 나 역시 그랬다. 정든 집을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나는 웹툰을 봤다. 그리고 나는 이제 더 이상 웹툰을 보지 않는다. 인류학 공부를 했다. 모스와 레비-스트로스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중학교 때 살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 때의 친구들은 더 이상 이 자리에 없지만, 공간의 탓일까, 내가 다시 어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중학교 때 즐겨듣던 노래로 MP3를 가득 채웠다. KIA 타이거즈는 끝없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다시 자전거를 즐겨타기 시작했다. P와 매일 아침 노원정보도서관을 다녔다. 중학교 때 끄적대던 여러 사랑 시집을 기증했다. 집은 그대로인데, 사람이 커져서, 처음으로 책을 누군가에게 팔아보았다. 슬픈 일이었다. <쌀과 소금의 시대>를 읽으면서 나만의 웹툰 콘티를 짰다. K가 군대에 갔다. M이 졸업했다. 진심으로 그의 졸업을 축하했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오면서 새벽부터 일어나는 생활을 시작했다. (취침시간은 그대로였다!) 매일 6시 10분 새벽 지하철을 타고 학교로 왔다. 마지막 2학기라는 이름으로, 21학점을 생애 처음으로 넣어보았다. 청강을 2과목이나 했지만, 이는 처음부터 말도 안되는 계획이었다. <세계정치론> 번역과 교열을 계속 진행했다. <연민의 굴레>가 끝이 났다. 다시 K를 만났고, 그와 <인도양문명사> 이야기를 했다. 민망했지만, 무언가 기대했던 작은 꿈을 하나 이룬 기분이었다.
자유민주주의를 생각하면서,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 테제를 음미했다. 1987과 1989. 자유민주주의의 외부를 쉬이 상상할 수 없는 나는 항상 '몰락'만을 경험했다는 생각을 했다. 9.11이 10주년이 되었다. 지금 나의 인생을 어느 정도 '결정'했던 사건. 강렬한 토마호크 미사일의 섬광. 그 후 10년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가? 내가 왜 지금 이 공부를 하고 있는 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졸업 논문 주제를 정했다.
10월. 오랜만에 학교에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연애시대>와 <Once> OST가 어울리는 가을이었다. B가 하께 살자는 제안을 했다. 지하철을 오며가며 도스토예프스키를 진지하게 읽었다. 나는 항상 이반을 동경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이성이 아니라 삶 그 자체를 살아가는 알료샤를 동경하게 되었다. (물론 나는 절대로 알료샤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많이 졸았다. 인민의 '아편'을 만든 S가 사라졌다.
O에게 안 좋은 일이 일이 있었다. B와 J와 각자의 삶에 대해 평가를 내려주었다. 공통적으로 2008년이 그 기점이 되었다는 점이 신기했다. 장기 2008년은 계속된다. 나에게 이후의 삶은 큰 의미가 없을지도. <슬레이어즈>를 보면서 이 세계가 멸망하더라도 단 한 명에게 걸 수 있는 '희망'에 대해 생각했다. 카다피가 죽었다. 시작보다 중요한 것은 끝이다.
11월. 자살에 대해 생각했다. 이미 세계가 만들어져 있고, 누군가에 의해서 모든 것이 이미 말해진 것이라면, 과연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혹은 할 수 있는가. J가 나에게 던지는 커다란 질문이었다.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면, 왜 나는 지금 당장 자살하지 않는가라고 까뮈는 말할 것이다. 의미가 없는 세상에서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어려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 C가 많이 아파서 수술을 해야만했다. 1500. 다른 P가 결혼식을 올렸다.
정말 오랜만에 다시 영화를 보았고, 광화문과 종로를 K와 걸었다. 가을비인지 겨울비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비가 왔다. 항상 그렇듯 중간고사는 못 봤고, 과제들은 여전히 미리미리 하지 못했다. 시험기간만 오면, 컨디션은 최악인 것은 여전했다. 이 와중에 졸업 논문 주제가 통과되었고, 이제 나의 마지막 학부 2학기가 마무리되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