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환
질문을 듣고, 곰곰이 생각을 하나 조홍진이 보기에는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무언가를 말할 것처럼 하다가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훗날 사람들은 김일환이 문제를 두고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기억하고 일부 사람들은 김일환이 실제로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지 않았었냐고 진술한다.
배문형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지 않다고 전제한 후,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으냐 못 넣으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더 중요한 것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것이 나에게도 보편적 준칙으로 적용될 수 있을 정도로 윤리적이냐는 것이다. 혹은 '무지의 베일' 속에서 과연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먼저라고 주장한다. 옆에는 피터 싱어의 <동물 윤리학>이 밑줄 친 채로 놓여있다.
배문형(술이 조금 들어감)
코끼리가 냉장고에 들어가지 못하는 건 자본 구성의 고도화 때문이라고 말하며 흐느낀다. 200년 뒤면 세상은 질적으로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옆에는 가라타니 고진의 책이 놓여있다.
뉴질랜드 다녀온 배문형
코끼리가 사랑에 빠진다면 냉장고에 흔쾌히 들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오학준
자신은 '학부생'이라고 소개한 후,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기 위해서는 우선,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된 고대 물리학부터 근대 자연과학 혁명, 양자역학까지 모두 알고 있어야 한다고 전제한 후 이를 줄줄 설명하나 아무도 이를 알아듣지 못한다. 종국에는 최신 담론들을 원용하며 '코끼리적인 것'과 '냉장고적인 것'을 이야기한다. (l'elephant이 아니라 la elephante라는 신조어까지 소개한다) 조홍진이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묻자 집이 멀다고 먼저 나가면서 훗날 블로그에 정리해서 글을 올린다고 약속한다. 어느날 블로그가 갑자기 폐쇄된다.
그리고 훗날 <그날이 오면> 앞으로 <코끼리적인 것과 냉장고적인 것 : 발터 벤야민의 판타스마고리아>이라는 긴 서평이 제출된다. 오학준은 2등상을 수상한다.
조홍진
앞의 논의들을 조목조목 비판한 후, 모두가 추상적인 이야기만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기 위해서는 담론보다는 먼저 20대가 현실적으로 사회세력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대를 조직화하기 위해 진두에 나서나 별다른 호응이 없다. 어느 날 녹두에서 '나만 따르면 되는데...역시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중얼거리며 취해 있는 조홍진이 핸드폰을 쥔 채 발견된다.
문병준
현재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지 못하는 이유는 대중들이 무식하기 때문이라고 일갈한다. 그래서 어떻게 대중을 계몽시킬 수 있냐고 물으면,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만 읽으면 답이 다 나와있는데, 그건 너가 이해하기 어려우니 우선 플라톤의 <국가>부터 꼼꼼이 읽고 오라고 한다.
옥창준
문병준의 말까지 들은 후, 그 자리에서는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는다. 심적으로 문병준의 생각에 동의하는 듯 보이나, 모두에게 티를 살만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 집에 가서 역사적으로나 인류학적으로 코끼리를 실제로 냉장고에 넣은 사례가 있는 지 알아본다. (이슬람 지역의 문헌은 반드시 본다.)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블로그에 거대한 정리글을 쓰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올라온 글은 "코끼리와 냉장고는 다 근대 서구적 개ㅋ념ㅋ" 딱 한 줄.
차지연
아이폰을 이용해 '코끼리를 어떻게 냉장고에 넣지?'ㅋㅋ란 글을 트위터에 올린다. 이를 보고 달린 수많은 재치있는 댓글과 리트윗을 보면서 재밌어하다가 정작 자신 앞의 질문을 잊는다. 근무하러 돌아간다.
꽁트는 꽁트일 뿐...ㅋㅋㅋ
